日立 가전 매각의 시사 — 가전산업의 주도권은 어디로 가고 있나
日立 가전 매각의 시사
가전산업의 주도권은 ‘제조’에서 ‘규모·유통·서비스’로 이동하고 있다
日立의 가전사업 매각은 단순한 사업 재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일본을 대표하던 종합전기 제조사가 생활가전 사업의 지배권을 유통기업 ノジマ 그룹에 넘긴다는 점에서, 이는 일본 가전산업의 현재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日立는 가전사업을 신설 회사로 분할한 뒤, 그 지분 80.1%를 ノジマ 측에 넘기는 구조를 발표했다. 日立의 2025년도 결산 설명자료 기준으로도 ノジマ 80.1%, 日立 GLS 19.9%, 이전 가격 약 1,100억 엔이라는 구조가 제시되어 있다.
과거 일본 가전은 세계 시장의 표준이었다.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오디오, 카메라까지 “일본 제품”이라는 말 자체가 품질의 보증처럼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가전시장은 전혀 다르다. 소비자가 제품을 고를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더 이상 제조국이나 전통 브랜드만이 아니다. 가격, 화면 크기, 에너지 효율, 스마트 기능, 배송 속도, 애프터서비스, 그리고 온라인 리뷰가 구매를 결정한다. 브랜드의 권위보다 실제 체감 가치가 더 강하게 작동하는 시장이 된 것이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중국 기업들이 있다. 전체 주요 가전 시장에서는 Haier가 Euromonitor 기준 2025년까지 17년 연속 세계 1위 주요 가전 브랜드라고 발표했고, 냉장고·세탁기·냉동고 등 핵심 품목에서도 장기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TV 시장에서는 Hisense와 TCL의 존재감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Hisense는 전체 가전 1위라기보다는 100인치 이상 TV와 Laser TV 같은 특정 고성장 세그먼트에서 강한 1위 사업자에 가깝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국 기업들이 더 이상 “싸구려 제품을 많이 파는 회사”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가격이 무기였다. 지금은 가격에 더해 품질, 대형화, MiniLED, RGB LED, 스마트 기능,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까지 결합하고 있다. 프리미엄 시장으로 올라가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한때 일본과 한국 기업들이 중국 기업을 저가 시장의 경쟁자로만 봤다면, 이제는 프리미엄 대형 TV와 고급 가전에서도 직접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Sony의 행보도 이 흐름을 보여준다. Sony는 TCL과 홈엔터테인먼트 분야 전략적 제휴를 위한 계약을 체결했고, 합작회사는 TCL이 51%, Sony가 49%를 보유하는 구조다. 이 회사는 TV와 홈오디오 등 Sony의 홈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승계하게 된다. Sony 브랜드와 BRAVIA 이름은 유지되겠지만, 사업의 운영 구조는 더 이상 과거의 “일본 제조사 단독 모델”이 아니다. 브랜드와 화질 기술은 Sony가 갖고, 제조 규모와 공급망 경쟁력은 TCL과 결합하는 방식이다.
Panasonic 역시 TV와 가전에서 과거 같은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고급 가전, 주택설비, 배터리, B2B 솔루션 등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흐름이 강하다. 일본 가전기업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범용 생활가전에서 중국 기업과 정면으로 가격 경쟁을 하기보다는, 브랜드가 살아 있는 영역, 고부가가치 영역, 또는 기업용 사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흐름은 한국 기업, 특히 LG와 Samsung에도 영향을 줄까. 답은 “이미 영향을 받고 있다”에 가깝다.
TV 시장을 보면 그 변화가 특히 분명하다. Samsung은 여전히 글로벌 TV 시장에서 강력한 브랜드와 점유율을 가진 기업이지만, TCL과 Hisense의 추격 속도는 빠르다. 특히 대형 TV, MiniLED, 저가·중가 모델에서는 중국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과 생산 규모가 매우 강하게 작동한다. TV는 이미 “브랜드 전쟁”이면서 동시에 “규모와 원가 전쟁”이 됐다.
Samsung의 가전사업 역시 구조조정 압력을 받고 있다. Reuters는 Nikkei 보도를 인용해 Samsung이 2026년 말까지 중국 내 TV·가전 판매 사업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배경에는 품질을 끌어올린 중국 로컬 제조사들의 저가 공세가 있다. Samsung은 공식적으로는 사업 구조를 수시로 검토하지만 확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즉, 이것을 곧바로 Samsung의 철수 확정으로 볼 수는 없지만, 중국 시장에서 한국 가전 브랜드가 받고 있는 압력은 분명하다.
반면 LG는 조금 다른 위치에 있다. LG는 생활가전에서 아직 강한 브랜드력과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다. 2025년 LG의 Home Appliance Solution 사업은 매출 26.13조 원, 영업이익 1.28조 원을 기록했고, 매출은 사상 최대였다고 발표했다. 또한 LG는 B2B, HVAC, 차량부품, webOS 플랫폼, 유지보수 서비스, 구독 모델 같은 “하드웨어 이후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키우고 있다.
결국 앞으로의 가전산업은 단순히 “누가 냉장고를 더 잘 만드느냐”의 싸움이 아니다. 누가 더 싸게 만들 수 있는가, 누가 더 큰 유통망을 갖고 있는가, 누가 설치와 유지보수까지 장악하는가, 누가 스마트홈 플랫폼을 통해 고객과 계속 연결되는가의 싸움이다. 제품 하나를 팔고 끝나는 산업에서, 제품을 설치한 뒤에도 데이터를 얻고, 서비스를 팔고, 구독료를 받고, 에너지 관리와 주택 인프라까지 연결하는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日立 가전사업이 ノジマ 그룹으로 넘어가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제조사가 유통사를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라, 유통과 고객 접점을 가진 회사가 제조 브랜드를 활용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가전의 가치는 공장 안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장, 온라인몰, 설치 기사, 수리망, 고객 데이터, 보증 서비스, 금융·구독 모델까지 포함한 전체 경험에서 만들어진다.
가전의 가치는 더 이상 공장 안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제조, 유통, 설치, 애프터서비스, 데이터, 구독 모델이 결합된 전체 경험에서 만들어진다.
앞으로 중국 기업들은 중저가와 대형 제품 시장에서 더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Haier, Midea, Gree, TCL, Hisense 같은 기업들은 내수 규모, 부품 조달력, 생산 효율, 빠른 제품 출시 능력을 갖고 있다. 특히 소비자가 “이 정도 품질이면 충분하다”고 판단하는 순간, 전통 브랜드의 프리미엄은 빠르게 약해진다. 세탁기, 냉장고, TV, 에어컨처럼 기술이 성숙한 품목일수록 이 현상은 더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이 곧 LG와 Samsung의 패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들에게 남은 길은 비교적 명확하다. 저가 대량 판매 시장에서 중국 기업과 끝까지 싸우기보다는, 프리미엄 제품, 빌트인 가전, HVAC, 데이터센터 냉각, 스마트홈, 콘텐츠 플랫폼, 유지보수, 구독 모델로 이동해야 한다. 하드웨어 기업에서 생활 인프라 기업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일본 가전기업들은 이 전환에서 한발 늦었다. 강한 기술과 브랜드를 갖고 있었지만, 글로벌 규모 경쟁과 가격 경쟁, 소프트웨어·플랫폼 전환에서 충분히 빠르지 못했다. 그 결과 브랜드는 남았지만 사업 주도권은 점차 외부로 넘어가고 있다. 日立의 이번 매각은 그 긴 흐름의 한 장면이다.
한국 기업들은 아직 시간이 있다. LG는 생활가전의 수익성과 브랜드가 살아 있고, Samsung은 TV와 스마트홈 생태계에서 여전히 강한 기반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무한한 것은 아니다. 중국 기업들은 이미 저가 시장을 넘어 프리미엄 시장으로 올라오고 있다. 이제 LG와 Samsung이 지켜야 할 것은 단순한 제품 점유율이 아니라, 고객과의 접점, 서비스 수익, 그리고 생활공간 전체를 설계하는 능력이다.
日立 가전 매각은 일본 기업 하나의 사업 정리로 끝나는 뉴스가 아니다. 그것은 가전산업의 중심축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앞으로의 가전시장에서 제조만 잘하는 회사는 살아남기 어렵다. 싸게 만들 수 있거나, 강한 브랜드를 갖고 있거나, 고객과 계속 연결될 수 있거나, 세 가지 중 적어도 하나는 압도적이어야 한다.
그 기준에서 보면, 중국 기업은 제조와 가격에서 강하고, 일본 기업은 브랜드는 남았지만 사업 체력은 약해졌으며, 한국 기업은 아직 전환의 기회가 남아 있다. 다만 그 기회는 “좋은 제품을 만들면 팔린다”는 과거의 공식 안에는 없다. 앞으로의 승자는 가전제품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가전제품을 통해 생활공간과 고객관계를 장악하는 회사가 될 것이다.